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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titleThe Light of the world is JESUS title미련 title어머니의 기도는 사랑입니다 titleDear. Monami titleFinding Nemo titleLa vita e bella title외국인과 나그네 같은 인생 title알프스의 겨울 titleWELCOM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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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갑니다.

2014-04-13 07:47:24
처 독주회 사진

2013-10-31 18:36:53
안녕하세요..목사님

2011-12-09 14: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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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은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My Photography함철훈 I do not go out and look for good things to shoot. To me, shooting capturing the world into the lens of a camera, is an inward process. When My heart runs over with stories I want to tell, and when my spirit is filled with His words, only then, do I pick up the camera, load the film, and start shooting His works unders His Light. In confidence, shooting is the last step. The art of photography proposes a challenge and thus, enriches my life. The challenge works my patience, and patience, experience, and experience, and understanding. Finally understanding makes me not ashamed. Photography is a vessel to manifest to the public, His invisible creative hands and the love behind it. 재미 사진작가 함 철훈 선생의 홈페이지(http://vwinstitute.com/vwi.htm)

2006-06-13 18:28:20
독립 운동가 조부 장익부(張益富) 장로에게 영향을 끼친   George S. McCune 선교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8/09/2010080901938.html * 위의 주소를 클릭하면 신성중학교 교장George S. McCune 선교사에 관한 조선일보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장익부 [張益富, 1891.9.9~1938.8.4]장로교 장로.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숭의단과 광복군 등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1891년(고종28년) 9월 9일 평안북도 철산(鐵山)에서 태어났다. 선교사 George S McCune 이 교장으로 있던 평북 선천의 신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 길에 올라 신학을 공부했으나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독립 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20년 5월 비밀결사단체 숭의단(崇義團)을 조직하여 정원범(鄭元範)· 정치민(鄭致敏)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숭의단은 국내로 들어오는 독립운동가의 신변 보호, 군자금 모집, 독립군의 국내 무장항일투쟁시 협력 등을 목적으로 하였다. 장익부는 조직의 부단장(副團長)을 맡아 철원·선천(宣川) 일대에 사는 부호들에게 군자금을 모집하고 의용군을 모집, 만주독립군 본부에 파견함과 동시에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와 독립운동단체 등에 제공하였다. 광복군(光復軍)에도 참여하여 이동일(李東日)·정병호(鄭炳浩) 등과 함께 항일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하고, 김상여(金尙汝)·이학필(李學弼)·이동근(李東根) 등을 새로 참여시켰다. 1921년 12월에는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의 이지돈(李枝敦)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벌였다. 그뒤 일본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어 서봉근(徐奉根)·김덕상(金德湘) 등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1921년 12월 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5년형이 확정되어 서울 마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마침내 1925년 11월 6일 만기 옥중생활을 마치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도 “또다시 독립투쟁하는 것만이 내가 살 길이며, 독립이 완성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 운동을 펴겠다.”라고 결심한 뒤 만주로 건너가 독립투쟁중 1938년 8월 4일 사망. 1977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東亞日報, 功績調書(國家報勳處, 1977) 韓民族光復鬪爭史(李炫熙, 正音文化社, 1990) 光復鬪爭의 先驅者(李炫熙, 東方圖書, 1990). 〈李炫熙〉

2006-06-04 18:37:41
[Captured] 해외 유명 사진 싸이트

http://www.carldekeyzer.com http://www.fujiwarashinya.com/photogallery http://www.tenneson.com http://www.howardschatz.com http://www.michaelandpaula.com http://www.edwardriddell.com http://www.statongreenberg.com http://www.f8fineart.com http://www.singergallery.com http://www.davidashcraftgallery.com http://www.sothebys.com http://www.oswaldgallery.com http://www.apexart.com http://www.montanaphotoart.com http://www.throckmorton-ncy.com http://www.whiteroomgallery.com http://www.kentbarker.com http://www.fineartnudes.com http://www.workshopsoneastpenbay.com http://www.thelandscapegallery.com http://www.tommillea.com http://www.capecodphotoworkshops.com http://www.peterfetterman.com http://www.johnstevenson-gallery.com http://www.swanngalleries.com http://www.tillmancrane.com http://www.leegallery.com http://www.junebateman.com http://www.catherinejohnsonart.com http://www.rosegallery.net http://www.plumgallery.com http://www.bleifus.com http://www.keylightphoto.com http://www.levingallery.com http://www.savannahphotosorkshops.com http://www.photoworkshopsitaly.com http://www.johnclearygallery.com http://www.clydebutcher.com http://www.pictureprovence.com http://www.lodimapress.com http://www.infinite-editions.com http://www.susanspiritusgallery.com http://www.williamgallies.com http://www.alexanderlowry.com http://www.matthewdonovanlennert.com http://www.tbkphotos.com http://www.junebateman.com http://www.nimbusart.com http://www.dennismecham.com http://www.featherstone-photo.com http://www.johndunlopphoto.com http://www.vboycegallries.com http://www.jeffklingler.com http://www.cavazosphoto.com http://www.mgpfineart.com http://www.imagesbytulsky.com http://www.kimweaton.com http://www.orsphoto.com http://www.issuesandicons.com http://www.jasonweston.com http://www.tboothgallery.com http://www.markevanthomas.com http://www.rgbullock.com http://www.hamanistic-photography.com http://www.visionquestphotography.com http://www.timmacyphotography.com http://www.rholmanjrphoto.com http://www.ewingphoto.com http://www.beasleyphotography.com http://www.helenkgarber.com http://www.creativecontrasts.com http://www.richardavedon.com http://www.peterlindbergh.net http://www.demarchelier.net http://www.mondinodejavu.com http://www.arthurelgort.com http://www.sokolsky.com http://www.mocafico.com

2005-11-18 19: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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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나의 거리는 ?

미국 일리노이 공대의 문화인류학 교수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 1914-2009)은 사람은 주변의 공간을 자신의 영역이라 여기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거리가 달라진다는 ‘근접학(proxemics)’을 창시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여덟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크게 “밀접 거리,” “개체 거리,” “사회 거리,” “공중 거리”의 4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을 '안쪽'과 '바깥쪽', 즉인간관계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관계와 내면적인 관계로 나누어 여덟 가지로 세분했습니다. 그의 거리 구분의 개략은 이렇습니다. “밀접 거리” (0에서 45센티미터). 이것은 상대방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아주 친밀한 사람들 간의 거리로, 부모와 자녀, 부부나 연인의 거리입니다. 닿고자 하면 상대와 닿을 수 있는 거리이며, '닿아도 좋다'는 의사 표시를 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개체 거리” (45에서 120센티미터)는 상대와 닿는 데 손을 뻗으면 되는 거리로, 한 사람이 혹은 양쪽이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거리입니다. '친구사이'의 거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 거리” (120에서 360센티미터)는 '업무상 교제'의 거리를 말합니다. '업무상 거리'의 기준은 암묵적인 동의하에 만들어지는데, 이 거리는 '형식적,의례적으로주고받는 사무적인거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감염예방 차원에서 두는 거리두기에 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중 거리” (360센티미터 이상)는 거의 무관한 사람들의 거리입니다. 현대 사회의 모습입니다. 인구는 폭발하는데 개인적인 관계나 소통과는 무관하게 살아갑니다. 한 번 부모님과 또는 가족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거리를 말할 때 ‘공간적 거리’만 생각하는데 잘 생각해 보면 이렇듯 여러 종류의 거리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심리적 거리’도 있고요 ‘신앙적 거리, 영적 거리’도 있습니다. 에드워드 홀이 분류한 거리 개념을 성도들이 주님과 갖고 있는 관계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사라 아담스(Sara. F Adams)가 창세기28장을 읽던 중 영감을 받아 쓴 찬송시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이란 찬송이 있습니다. 도망자 야곱은 황량한 벌판에서 외롭게 밤을 지내야 하는 처지에 있었으나 사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택하신 하나님께서 그곳에 그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일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다정했던 이웃이나 친구도 함께 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가있게 마련입니다. 아담스도 그러한 때 거기서 자신이 가까이 할 대상, 자신과 항상 함께 할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고통을 감내할 수 있으며, 죽음의 길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 아무리 고단하고 어려워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활에는 소망과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2022-03-11 12:36:35
친구여! 나와 함께 나이들어 가자

새해가 되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또 한 살 나이를 먹었다. 어린 아이들은 엄마 없는 사이, 호기심에 화장대 앞에 앉아 어른 흉내를 내보기도 하지만 내 나이쯤 되어 의무와 책임감 사이에서 지친 사람들에게는 결코 신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현대 문화는 젊어 보이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이 없는 세계관에서는 어쩌면 이런 문화가 당연하다 하겠다.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를 굳이 꺼내 들지 않더라도 요즘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지연시킬 가장 확실한 방법인젊음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과학적 능력과 상상력을 총동원하여비타민 보조제나 다이어트 프로그램,운동기구 등, 건강산업을 촉망받는 21세기 블루칩으로 번창시켜 놓았고, 젊게 보이려는 욕망으로‘보톡스’요법에, ‘호르몬’요법에 .. 불청(불타는 청춘)의 환상을 좇아 안간힘 쓰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사람들은 오랜 만에 만나면“젊어보인다”, “옛날이나 똑같다”, “하나도 안 늙었다”는 덕담을 서로 교환한다. 이런 말들은 사실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말들이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가“왜 이렇게 팍 늙었니?”,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면 그것이 사실이라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래서‘안티에이징’(Anti Aging)즉 노화 방지를 위한 클리닉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음은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신선하고 아름답다. 프로제리아(Progeria)는 아동들이 걸리는 질환으로 유년기에 노인의 외모가 되는 '소아조로증'이다. 처음으로 이를 기술한 의사들(1886년Dr.조나단 허친슨과1897년Dr.헤이스팅스 길포드)의 이름을 따서 허친슨-길포드 증후군(HGPS, Hutchinson-Gilford progeria syndrome)이라고 명명되었다. 조로증은 신생아4-8백만명중 한 명 꼴로 발생하는데 전 세계에서 대략200명에서250명사이의 아이들이 앓고 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남녀 모두에게 동등하게 발생하며 모든 인종에게서 발생한다. 소아조로증에 걸린 아이는 만1세까지는 정상으로 자라지만 그 이후 징후들이 나타나며10세 정도가 되면 외양은60세 된 노인처럼 보이고, 몸집은 대개5세의 정상아보다 작다. 30세 이전에 대부분 사망하며 아직 그 근본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외모나 생물학적 나이만 가지고 늙었다,젊었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젊은 노인이 있고 겉늙은 청년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젊은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리지만 생각이 늙은 사람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독일의 작가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영적인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85세의 갈렙은 몸은 비록 노인이었지만 믿음은40세 가나안을 정탐할 때 그대로였다. 85세 나이에 약속하신 가나안 헤브론 산지를 정복했다. 잠언16:31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을‘백발이 되면 영화의 면류관이 저절로 주어진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인생의 훈장 즉 황혼의 아름다움은 붉은 저녁 노을처럼 때가 되면 저절로 물들여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청춘을 시샘하지 않고 .. 나이들어 갈수록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워 할 수 있는 생을 향하여 오늘도 힘차게 달려 나가는, 잔나비 띠 6학년 5반 나의 친구들이여. Bravo your life !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자! 가장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의 후반,그것을 위해 인생의 초반이 존재하나니. " ( Rabbi Abraham Ben Ezra )

2020-01-11 09:20:29
위대한 퇴장

영국 태생 피아니스트 <제랄드 무어>라는 분이 있습니다. 1987년에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피아니스트인데 특이한 점은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독주회를 갖지 않고 오직 평생을 성악가들의 반주자로 보낸 피아니스트라는 점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 중에 1967년 2월 제랄드 무어의 은퇴를 기념하여 그동안 그와 함께 공연해 왔던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세 명의 그 시대 최고 성악가들과 함께 한 실황연주 음반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독주 연주를 하고는 관객들에게 “Am I too loud?” “내가 너무 시끄러웠습니까?”하고 물어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고별 무대에서 조차도 여전히 성악가들을 돕는 반주자임을 그는 잊지 않았습니다. 반주자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같은 무대에서 연주를 해도 청중의 갈채는 독창자나 독주자에게 돌아가는 그림자 같은 존재입니다. 연주곡도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 늘 그늘에 묻혀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품고 악기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또한 재능이 탁월하고 충분히 훈련받은 피아니스트라면 반주자가 되기보다 독주자가 되기를 꿈꿀 것입니다. 제랄드 무어의 경우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자신만의 음반을 낸 적이 없고 일평생 반주자의 위치를 고수했던 사람이지만 그는 위대한 피아노 반주자 였습니다. 디스카우, 분덜리히, 슈바르츠코프 같은 성악가는 물론 거장 카잘스. 드 프레 같은 연주자들도 그와의 연주를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는 자기의 반주가 성악가들의 노래에 누를 끼치지 않을지 늘 염려 했다고 합니다. 그의 일화는 문득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요한3:30)고 했던 세례 요한을 떠올립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주님을 세우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낮춘 사람입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위대함입니다. 성공 강박에 사로잡힌 시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사람이 많을 때, 자기를 버리고 주님의 뜻을 앞세울 때 비로소 주님의 교회가 되며 하나님나라는 확장되어 갑니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지천에 넘쳐나는데... 위대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시대입니다. 오늘도 나는 감히 위대한 퇴장을 꿈꾸며 겸손히 하루를 엽니다.

2017-06-02 11: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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